저는 귤, 자두, 딸기 처럼 달콤함도 있지만 신맛도 함께 있는 과일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단맛이 강한 수박, 감, 망고, 메론 등과 같은 종류의 과일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주로 과일은 식후에 디저트로 먹곤 합니다. 평일 회사에 있을 때에는 간식으로 과일을 챙겨먹기 쉽지가 않아 보통 식후에 조금 먹게 됩니다.
드라마에서도 항상 식후 차와 함께 과일을 먹는 장면들이 흔히 나오곤 합니다. 아마 실제로 대부분 사람들이 식후 개운하게 과일을 디저트로 드실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혈당 관련 정보들을 계속 접하게 되면서 제가 좋아하는 과일들의 단맛이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식후 이런 달달한 과일을 먹으면 혈당스파이크 증상이 심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달콤한 과일을 멀리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과일은 비타민과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품이지만, 당분을 함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조건 안심하고 먹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혈당 관리를 위해 과일을 무조건 피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과일인지 뿐만 아니라 얼마나 먹는지입니다.
GI지수가 높은 과일은 무조건 피해야 할까?
보통 당뇨나 혈당 관리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지표가 GI(Glycemic Index, 혈당지수)지수입니다.
이는 특정 음식을 섭취했을 때 혈당이 얼마나 빠르게 올라가는지를 0에서 100까지의 수치로 나타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GI55이하는 저혈당지수, GI56~69은 중간, GI70이상은 고혈당지수 식품으로 분류합니다.
그런데 이 GI지수에는 한계점이 있습니다.
GI지수는 음식의 종류와 상관없이 무조건 '탄수화물 50g'을 섭취했을 때를 기준으로 측정한 수치이기 때문에 실제로 그 식품을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에 대한 것은 전혀 반영하지 않습니다.
이런 저/중/고 3단계 분류 기준은 대한당뇨병학회 뿐 아니라 영국 Diabetes UK 등 해외 당뇨 관련 기관에서도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국제적인 분류 기준입니다.
대한당뇨병학회 자료에 따르면 제가 좋아하는 수박의 GI지수가 72로 고혈당지수 식품으로 분류된다는 것을 알고 놀랐는데요.
GI지수만 보면 수박은 혈당스파이크를 일으키는 아주 위험한 먹으면 안되는 과일로 보이며, 오랫동안 당뇨 환자는 수박을 피해야 한다는 오해를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GI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수박을 ‘먹으면 안 되는 과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수박을 통해 탄수화물 50g을 채우려면 한번에 수박을 수백 그램 이상 먹어야 합니다.
실제 식사에서는 GI를 측정할 때처럼 탄수화물 50g을 기준으로 수박을 먹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 섭취량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결국 GI가 높은 식품이라도 실제로 한 번에 먹는 양이 적고 식품에 탄수화물 함량이 낮다면 혈당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GI가 낮은 음식이라도 한꺼번에 많은 양을 먹거나 탄수화물 함량이 높으면 혈당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실제 섭취량까지 고려한 GL지수(혈당부하지수)
이러한 GI지수의 한계를 보완하고 실생활에 맞게 적용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GL(Glycemic Load, 혈당부하지수)지수입니다.
GL은 특정 식품을 실제로 먹는 양에 들어 있는 이용 가능한 탄수화물과 GI를 함께 고려한 지표입니다. GL지수는 아래와 같이 계산합니다.
GL = (식품 1회 섭취량의 탄수화물 함량(g) × GI지수) ÷ 100
예를 들어 GI가 60인 음식에 이용 가능한 탄수화물이 10g 들어 있다면 GL은 약 6이 됩니다.
GL 수치는 10이하면 저혈당부하, 11~19는 중간, 20이상이면 고혈당부하로 분류합니다.
이 기준으로 수박의 GL지수를 계산해보면 여러 자료들에 따라 편차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저혈당부하 구간에 들어가 안전한 과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GL이 낮다고 많이 먹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대한당뇨병학회의 식사요법 가이드라인에서도 과일을 섭취할 때는 단순한 혈당지수(GI)만을 맹신하기보다는 실제 먹는 양을 반영한 '1회 적정 섭취량'을 지키는 것이 혈당 관리에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생과일, 건과일, 과일주스는 같은 과일인데 왜 다를까?
그렇다면 과일의 종류만 주의하면 안심할 수 있을까요? 같은 과일이라도 과일의 형태에 따라 혈당에 미치는 영향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생과일을 씹어 먹으면 식이섬유가 장을 통과하며 당의 흡수 속도를 지연시켜 주지만, 갈아서 주스로 마시면 식이섬유의 구조가 파괴되고 당분이 더 빠르게 흡수되어 혈당을 급격하게 상승시킬 수 있습니다.
건과일의 경우도 주의해야 합니다. 건과일은 과일을 말리는 과정에서 수분이 대부분 빠져나가면서 같은 무게를 먹었을 때 생과일보다 당과 탄수화물이 훨씬 농축됩니다.
저는 곶감과 감말랭이를 아주 좋아하는데요. 홍시로 먹을 때에는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른데 곶감은 두 세개 정도는 거뜬히 먹습니다. 감말랭이는 쉴새 없이 입으로 들어갑니다.
이렇듯 건조된 과일은 부피가 작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과도하게 먹게 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건과일은 GI 수치만 확인하기보다 1회 섭취량(일반적으로 건과일은 약 30g정도를 1회 섭취량으로 생각할 수 있음)과 탄수화물 함량을 함께 확인하고 가능하면 설탕이나 시럽이 추가되지 않은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혈당 걱정 없이 똑똑하게 과일을 즐기는 방법
식후 먹는다면 전체 탄수화물 섭취량을 고려하기
식사 후 혈당이 오르고 있는 상태에서 후식으로 달콤한 과일이 추가로 들어오면 혈당은 더 급격히 오를 수 있습니다.
다만 ‘식후 과일은 혈당에 좋지 않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식후 과일을 먹더라도 과일의 양과 그날 식사에서 섭취한 탄수화물의 양을 함께 고려하면 됩니다.
주스보다 통과일을 먹기
위에서 언급했듯이 식이섬유가 장을 통과하며 당의 흡수 속도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되며 포만감도 느낄 수 있습니다.
1회 권장량만 덜어놓고 먹기
아무리 GL지수가 낮은 과일이라도 큰 접시에 많이 담아놓고 먹다 보면 어느새 과식하기 십상입니다. 1회 적정 권장량을 미리 덜어두고 먹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잘 익은 과일보다 조금 덜 익은 과일을 선택하기
하버드 공중보건대학 자료에서는 덜 익은 바나나와 잘 익은 바나나의 GI가 서로 다를 수 있으며, 중간 크기 바나나는 탄수화물 함량 때문에 GL이 GI보다 높게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과일에는 우리 몸의 활력을 되찾아주는 비타민, 미네랄, 항산화 물질이 듬뿍 들어있습니다.
무조건 GI지수 하나만 보고 먹는 것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GL지수와 적정 섭취량을 알아두고 먹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